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중에서 제대로 된 거 하나 찾았습니다. 2023년 11월에 나온 '푸른 눈의 사무라이'인데요, 처음엔 또 미국에서 만든 일본풍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서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봤는데 완전 헛다리 짚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잘 만들었더라고요. 8화짜리 시즌1 보는데 7시간이 후딱 갔고, 벌써 시즌2가 기다려지는 상황입니다.
혼혈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 주인공
이야기는 17세기 에도 시대 일본을 배경으로 합니다. 당시 일본은 쇄국 정책으로 외국인을 완전히 배척하던 시기였죠. 주인공 미즈는 일본인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데, 푸른 눈 때문에 어릴 때부터 마을 사람들한테 온갖 구박을 다 받으며 자랍니다.
그러다 어머니가 불에 타 죽는 사건을 겪으면서 미즈는 복수를 결심합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원인, 즉 어머니를 겁탈한 것으로 추정되는 백인 남자 4명을 찾아서 죽이겠다는 거죠. 여기서 재밌는 건 미즈가 장님 도공 에이지를 만나 그 밑에서 검 만드는 법과 검술을 배운다는 설정입니다. 여자라는 사실도, 혼혈이라는 사실도 철저히 숨기면서요.

등장인물들이 의외로 입체적임
미즈 혼자 다니는 건 아니고요, 양손이 없는 소바 요리사 링고가 제자가 되겠다며 따라붙습니다. 처음엔 짐만 될 것 같았는데 의외로 쓸모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과거에 미즈를 괴롭혔던 타이겐이라는 사무라이가 있는데, 이 친구가 미즈한테 처참하게 발리고 나서 재대결하겠다고 쫓아다니다가 나중에 묘하게 동료 같은 관계가 됩니다.
솔직히 복수극 스토리 자체는 새로울 게 없어요. 킬 빌 같은 영화 많이 봤으면 대충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좋은 이유는 캐릭터들이 단순하게 선악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다들 각자의 사연이 있고, 미즈도 완벽한 주인공은 아니에요.
작화가 진짜 미쳤다는 말이 절로 나옴
애니메이션 보면서 작화 때문에 감탄한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3D와 2D를 섞어서 만들었는데 그 경계가 자연스럽게 느껴져요. 한 컷 한 컷이 그림엽서처럼 예쁩니다. 에도 시대 건물이며 옷이며 풍경을 디테일하게 구현해놨더라고요.
특히 눈 덮인 숲 장면이나 5화에서 나오는 전통 문화 묘사 같은 건 정말 볼만합니다. 미국 제작진이 이 정도로 일본 문화를 공부하고 만들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예요. 손동작 하나하나까지 신경 써서 그린 게 느껴집니다.
액션은 킬 빌 + 무협 느낌
액션 장면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데요, 꽤 잔혹합니다. 피가 튀고 팔다리가 잘리는 장면이 거침없이 나와요. 그래서 청불 등급 받은 거고요. 근데 이게 그냥 자극적이기만 한 게 아니라 칼 쓰는 무게감이 제대로 살아 있습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은 딱 보면 아실 겁니다. 싸우기 전 긴장감 쌓는 방식이나 칼 부딪히는 소리 하나까지 신경 쓴 게 보여요. 중국 무협물 특유의 화려한 동작과 킬 빌의 잔혹한 미학이 섞인 느낌이랄까요.
다만 액션이 너무 많거나 그런 건 아니고, 미즈의 심리 묘사에도 상당히 공을 들였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칼싸움만 보는 게 아니라 왜 이렇게 싸워야 하는지 감정이입이 되더라고요.

여성 주인공 설정은 어떻게 봐야 할까
요즘 서양 작품들이 여성 주인공 내세우는 거 보면 억지스러운 경우가 많잖아요. 근데 이 작품은 그런 느낌이 덜합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여성 사무라이가 거의 없었던 건 맞는데, 미즈가 남자로 변장하고 살아야 했던 설정 자체가 그 시대의 차별을 보여주는 장치로 작용해요.
게다가 미즈만 강한 게 아니라 다른 여성 캐릭터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갑니다. 아케미라는 공주 캐릭터는 아버지한테 억눌려 살다가 결국 자기 길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이런 부분들이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서 괜찮았습니다.
일본어 더빙으로 보는 걸 추천
영어 원본도 괜찮은데, 일본어 더빙으로 바꿔서 보면 분위기가 확 달라집니다. 초월 더빙이라고 해야 하나, 대사 전달력이 훨씬 좋아요. 다만 한글 자막이 영어 기준으로 되어 있어서 일본어 대사의 뉘앙스가 제대로 전달 안 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시즌1 결말, 반전 하나 터뜨리고 끝남
8화까지 쭉 보면서 미즈가 복수 대상들을 하나씩 처리하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마지막에 드디어 최종 목표인 파울러를 만나서 칼을 겨누는데요, 여기서 반전이 터집니다. 파울러가 "네가 알고 있는 어머니는 친어머니가 아니다. 나를 죽이면 진실을 영영 모를 것"이라고 하면서 미즈를 흔들어 놓거든요.
결국 미즈는 파울러를 죽이지 않고 함께 런던으로 떠나는 걸로 시즌1이 끝납니다. 이게 열린 결말인데 답답하면서도 시즌2가 궁금해지는 구성이에요. 2023년 12월에 시즌2 제작이 공식 발표됐으니까 기다려볼 만합니다.
볼 만한가요? 솔직한 평가
일단 19금이라는 거 감안하고 보셔야 합니다. 폭력적인 장면이 꽤 많고, 성인용 장면도 나옵니다. 그래서 가족이랑 보기엔 좀 그렇고요.
액션 좋아하시는 분들은 당연히 추천이고, 스토리 있는 애니메이션 찾으시는 분들한테도 괜찮습니다. 다만 복수극 스토리 자체가 뻔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어요. 그래도 작화랑 연출력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뮬란 그림체 좋아하시거나 사무라이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한테 강추합니다. 최근 넷플릭스 애니 중에서는 확실히 수작이에요. 8화면 적당히 몰아보기 좋은 분량이고, 주말에 시간 내서 정주행하기 딱입니다.